병원에서 며칠 간병하는 덕분에 마스크를 근래 가장 오래 쓰고 있는 것 같다.
누이는 병동 6인 입원실에서 회복을 기다리는데, 경동맥 주사도 팔뚝으로 옮기면서 제법 운신도 하고 눈에 띠에 호전되어가는 게 보인다. 하지만 여태 방귀가 나오지 않아, 물 한 모금, 식사 한 끼를 못하고 있으니 옆에서 음료수 한 잔 마시기도 미안하다.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한나절 앉아 있자면, 옆에 환자들의 거동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누이 외에는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들이고, 또 정형외과 쪽 환자들이어서 식사든 화장실이든, 잠시 몸을 뒤척이는 순간까지도 수만 번의 앓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어르신들 대개가 그렇듯 전화기 진동음은 애초에 생각도 안 한다.
저마다의 트롯 벨소리가 시시각각 최대 음량의 소리를 최대한 오래도록 들을 수밖에 없는 아주 기막힌 환경을 가진 덕분에 병실은 나름 활기를 그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애초롭게도 간호사들은 이들을 간병한다고 거의 5분에 한 번 정도는 호출이 되어 오는 것 같다. 환자들보다 간호사, 간병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더한 게 이렇게 병실의 온갖 소동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련하게도 나는 만날 가방에 읽을 것과 타이핑 칠 것들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무겁게 채워 가고 있으나, 단 한 번도 그것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다. 겨우 "한국현대예술사대계" 십여 쪽이나 읽었나, 책장 몇 장 넘기면서, 마스크를 좀 내려 숨을 크게 내쉬어 본다.
충분한 수분 요건 탓인지 콧수염, 턱수염도 금세 무성하게 가뭇가뭇 자라있다. 수염 난 것을 제 손으로 슬슬 문지르면 제법 잔디풀 난 듯한 느낌이 나쁘진 않다.
병실에 있으면서 사십 년 넘도록 누이동생이랑 대화를 이리 많이 해본 적도 없는 것도 같으면서.
얘나 나나 그게 좀 어색한 것도 있고, 얼른 집에 가서 쉬라는 녀석의 말에 흔쾌히 엉덩이를 뗀다.
가스가 나오면, 제일 먼저 연락을 받는 다짐을 두고, 그게 뭐라고.
나는 병원을 나서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다시 그새 수북해진 수염을 쓰다듬었다.
집에 와서 수염을 밀어야겠다며 면도기를 꺼내는데, 제각기 키도 다른 털들이 마스크 때문인지,
그 할머니들의 앓는 소리 때문인지 오늘 따라 싱싱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