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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을 가리켜 말이라는 세상에서의 연속극

한밭춘추 - 대전일보 2014

by 그림씨 2023. 1. 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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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을 가리켜 말이라는 세상에서의 연속극

■2014 대전일보 한밭춘추 - 12. 31./조훈성(연극평론가)

벌써. 두 달여의 ‘연속극’을 마칠 때가 되었다. 내가 앞에서 말하고, 뒤에서 글 쓰는 사람이라 축제나 극장을 다닌 것에 대해 이러쿵저렁쿵 어디에 옮긴다는 게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내 말을 듣고 글을 보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단 게 어디 가당하기나 하단 말인가. 짧은 글도 이럴진대 한 극장의 드라마에 연관된 이들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그들과의 뒤풀이는 별이 다 쏟아지고 나서까지도 쉽게 끝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도발적 제목의 『예술가란 무엇인가』(베레나 크리커, 2010)에서는 ‘예술가’에 대해 “시민사회에 속하지 않았고, 시민사회의 법칙에 종속되지 않았다. 예술가는 직업이 없었지만 소명이 있음을 느꼈다.”라고 적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 그 ‘소명’을 갖고 작업하는 수많은 예술인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요새는 그 ‘소명’을 잃어버리게 하는 자본사회에 부속화된 문화예술생태를 자주 접하게 된다. ‘연극 보러 극장에 누가 온다고, 관객 코드가 뭔지나 알아?’라는 말도 듣는다. 그 ‘맞춤’이 진부하게 들린다. 주문생산적인 콘텐츠들이 부지기수여서 ‘수용적 입장’에서 선택된 안정적이고 거대한 고전 텍스트들이 끊임없이 소비되고 소모되기 일쑤다.

주말에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달나라연속극>(부새롬 연출)을 보았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모티브로 김은성 작가가 재창작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만드는 특별한 재능을 신춘 작 <시동라사>때부터 매우 부럽게 여겨왔다. 포스터에 글 한 줄이 인상적이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 때 견딜만해진다’, 그 연극에 나오는 한 가족의 이야기, 대학교 미화원 엄마 ‘만자’,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전전하지만 영화감독을 꿈꾸는 ‘은창’, 불편한 다리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은하’는 다름 아닌 우리사회 소외 계층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TV 연속극의 항상 그런 결말처럼 정말 이 연극도 그랬으면 좋겠단 생각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그 연극이 우리 환상을 이루어질 기계라고 단정 짓고 싶어서였나보다. 어쨌거나 내 바람을 실현해주지 않았으나 그랬기에 이 연속극은 더 감동적이었다.

<교수신문>에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다. 환관 ‘조고’가 황제에게 ‘사슴’이라고 바른말을 한 신하들을 모함해 화를 입게 했는데,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밝히지 않고 진실 규명을 외면해왔던 국가의 본면에 대한 풍자다. ‘상식과 순리’에 어긋난 이 시절에 예술의 소명을 다시 돌아본다. 얼마 전 학교 연찬회에서 나온 말을 새겨본다. ‘세상을 살며 들은 제일 무서운 말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라는 것. 연속되는 현실, 정말 무서운 말이다. 세상 모든 연속극은 결국 막을 내리게 되어 있으나 현실 세계는 변함없이 계속된다. 동시대적 가치, 시의성 있는 작품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는 당위를 어느 예술인이 부정할 수 있는가. 시절이 시절인지라 역으로 예술하기 더욱 좋은 시절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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