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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연극무대에 새바람이 분다고 했다

한밭춘추 - 대전일보 2014

by 그림씨 2023. 1. 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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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연극무대에 새바람이 분다고 했다

■2014 대전일보 한밭춘추 - 12. 2 ./조 훈 성(공연축제 평론가)

모 연극평론지에 평을 써야 했는데, 정확한 작품 출전 때문에 신문 자료를 뒤적이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하게 내가 서울에 잘 가는 한 소극장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1993년 7월 20일자 동아일보 게재된 <연극舞臺 새바람 분다>라는 제목의 기사 서두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상업적 연극에서 벗어나자’, ‘연극의 고정관념을 탈피하자’, ‘우리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자’, 이 같은 취지아래 뜻을 같이하는 중견 연출가 7명이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라는 모임을 최근 발족시켜 연극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창립회원을 보니 우리나라 현 연극계 유명한 연출들의 이름이다.

이십 년 전 기사인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연극의 새바람이 분다’는 제목의 기사가 지금까지 한두 건이 아니란 것이다. 그런데 그럴 적마다 ‘새바람 불 때’의 저 세 가지 취지는 예나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말을 뒤집어 보면, 어느 시대에서나 ‘상업적 연극’이 호황일 수밖에 없었으며, 작품들은 ‘연극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우리 연극’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소극장 활성화를 위한 운영 방법들도 그때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극장 대관료 할인으로 흥행수입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든, 진지한 창작극 공연 작품을 올리고, 휴관 때는 작품토론회를 개최한다는 등 극장 활성화를 위해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이 없다. 그 수많은 선언들대로 무대들이 만들어졌었다면 누구 말대로 ‘연극만세’의 세상이 되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극장에 들었다가도 표시내지 않고 빠져나가는지라 지역의 훌륭한 연극인들에 섞여 작품 만드는 일에 대해 새겨들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것이 아쉬웠던 찰나에 지난주는 삼사십 대 연극인 몇 명과 대담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들이 연극의 길로 들어서게 된 어제의 이야기에서부터 오늘의 창작 작업에 대한 고충, 내일이 불확실한 예술인으로서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경청하였다. 대담집을 만들다보니 이들이 좋은 연극, 그 ‘새바람’의 취지 때문에 오늘도 무대에 힘들게 오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하기 좋은 시절이 언제나 오겠는가. ‘시절’이란 단어는 왠지 모르게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것 같다. 사방천지에서 ‘왕년’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지금의 모양새들이 퍽이나 마땅치 않은가보다.

어제도 연극무대에 새바람이 분다고 했다. 어제의 새바람은 어제의 사람이 만들었고, 오늘 무대의 새바람은 누가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여러 사람의 입에서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오르내린다. 얼마나 재미있는가 싶어서 찾아보는데, 사람들이 내게 시청 요령까지 알려준다. ‘재미가 아니라 진성성을 갖고 보라고’ 말이다. 드라마 말미에 ‘장그래’란 주인공의 대사가 확실히 ‘진정성’있게 들린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나는 엊그제 만난 배우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이렇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당신이 이 연극의 자부심입니다.’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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