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 역사 앞에서의 연극’
■2014 대전일보 한밭춘추(11. 11.)
조훈성(연극평론가)
연극을 보자고 어디 ‘소극장’이라면 대개 사람들은 그 위치를 모른다. 상대와 약속한 시간보다 항상 먼저 나와 있어야 안심이 되는 성질이라, 또 그이를 친절하게도 극장까지 데려가기 위해 역시 내가 먼저 나와 앉아 있다. 가을을 타는 온갖 사물을 보면서 주머니에 손을 꽂고 그렇게 오감 훈련을 하고 있자니 전화가 걸려온다. 난 이미 건너편에서 미안하다는 소리가 올 줄 예감하고 있었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하면서 나는 혼자 극장에 간다.
오늘은 제5회 대전국제소극장 연극축제 참가작 <반쪽날개로 날아온 새>(홍주영 연출)를 보기 위해 드림아트홀에 앉아있다. 나는 이 작품을 극단 한강의 1995년 정기공연 작(장소익 연출)으로 1997년 제10회 전국민족극한마당(인천)에서도 공연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올해서야 대전에서 이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작품이 이 작품이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만큼에서는 극단 아리랑의 <나비>(2004, 김정미 작, 방은미 연출)도 있었고, 최근에는 윤정모 원작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원작으로 한 서울시극단의 <봉선화>(2013, 구태환 연출) 등의 작품도 있다. 안타깝게도 하필 내가 찾은 날이 일요일 마지막 공연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극장이 한산하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이 불편한가, ‘어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사회에서 몇몇 불순한 이들은 그 문제가 풀리지 않았는데도 풀기 어렵다고 묵히거나 덮어버리려고까지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 위안부 수가 자그마치 20만 명이라고 한다. 일본의 진심어린 참회는커녕 무라야마 담화마저 무효화하려는 그들의 노골적 우경화 행보를 본다. 또 얼마 전 6월 피해 위안부였던 배춘희 할머니의 별세 소식도 안다. 작품 속 세 여인, 봉기, 금주, 순이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그 비극적 몸부림 앞에서 이 연극, <반쪽날개로 날아온 새>는 나의 무기력한 어제를 알게 하고 이 때문에 한없이 아프고 또 부끄러워진다. 작품 전면에는 일본군에 희생당한 위안부의 아픔과 그 해원을 내세우고 있으나, 우리는 그 피해 위안부 여성에 대한 동정적 시선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여전히 친일 청산에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역사 청산 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모 매체에 실린 <봉선화>연출가의 인터뷰 기사가 인상 깊어 올려본다. ‘햄릿은 끊임없이 올라오면서 위안부는 식상하다고?’ 나는 진심으로, 이 연극으로 극장에 사람들이 가득 차길 바라마지 않는다. 괜찮지 않은데 자꾸 괜찮다고 말하는 내 모양을 새기면서, ‘우리는 괜찮지 않은 역사를 왜 괜찮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게 된 걸까’하고 곰곰이 따져보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역사는 지나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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