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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과 우린 너무 많이 굿바이하고 있다

한밭춘추 - 대전일보 2014

by 그림씨 2023. 1. 3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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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과 우린 너무 많이 굿바이하고 있다’(날 것 그대로의 연극)

■2014대전일보 한밭춘추 11. 4./ 조 훈 성(연극평론가)

이 세상 수만 가지 일을 어떻게 다 보고 알 수 있겠는가. 내가 한 해 동안 기백 편 넘는 연극을 보고 수십 군데 축제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는 일은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행복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작품과 축제를 봐야 한다는 강박증도 갖게 한다. 이렇게 우리는 ‘한 것’보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해,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는 ‘하지 못한 것’과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한 바람으로 연일 자신의 우주로 이륙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 지도 모른다.

지난주는 서울에서 한창 상연 중인 「로풍찬유랑극단」(극단 달나라동백꽃)과 「반도체소녀」(문화창작집단 날)을 보고 왔다. 두 작품 모두 초연 때 부득불 놓친 작품들이고해서 이번에 공연 소식이 들리자 바쁜 일 팽겨 치고 극장을 찾게 됐다. 막차를 타고 오면서, 나는 지역 연극을 곰곰이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구 말대로 무슨 ‘서울 문화병’에 걸린 ‘문제작(controversial work) 마니아(mania)’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작’이란 말이 이상하게 걸린다. ‘문제작’, 나는 그이에게 ‘문제작’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어졌다. 알다시피 ‘마니아’는 특정한 요소에 광적으로 집착하거나 열광하는 행위를 뜻한다. ‘광적(狂的)’, 왠지 그이의 뉘앙스가 부정적이다. 나는 그이의 이 부정적 뉘앙스에서 풍기는, ‘그런 연극(?)’에 대한 수상한 시선을 읽는다.

확실히 이제 연극이 상연되는 극장은 재미로 들락날락하는 곳이 되었다. 한 꺼풀 벗기면 영화 보러 가자는 말보다 연극 보러 가자고 하면 더 폼 날 것 같기도 하다. 연극 자체가 영화보다 생생한 ‘날 것’이므로 그 속에 벌써 ‘비주류(非主流)’의 문화적 속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이가 말하는 ‘문제작’이야말로 연극이 지향해야 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극장은 다시 해외 유수 작품을 번역한 작품이나 가벼운 주제의 통속극 등 대중극 전성의 시대를 맞이한 듯하다. 그게 어쩌면 이 각박한 현실 세계에 대한 풀이 해소감이 절실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겪는 바로 오늘의 문제 때문에 바로 그 ‘문제작’들이 ‘그런 연극’이라 치부되기보다 훨씬 의미 있게 바라봐졌으면 한다.

지역의 연극축제에 어김없이 ‘국제’란 말이 붙었다. 그만큼 세련된 연출과 메시지 전달 방식에 감탄할 작품도 여럿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의 연극이 해야 할 일과 ‘국제’란 말 사이에서, 용납할 수 없는 현실에서의 ‘비주류’에 대한 이야기가 드문 것이 아쉽다. 현실의 경계에서 어둠의 ‘달’은 그렇게 희망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극장 안의 ‘달’은 밑도 끝도 없이 어둠을 이기는 ‘사랑’과 ‘희망’만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내 귀에는 억울한 죽음과 쫓겨난 사람들에 대한 캄캄한 소식들로만 채워진다. 그래서 이 가을이 더 서늘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가수 신해철이 얼마 전 갑작스럽게도 세상을 등졌다. 그에 대한 추모로 지인들은 옛날의 추억에 덧붙여 수많은 사연들을 이야기한다. 추모할 만한 사람, 기억할 만한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다. 먼 사람이라 생각했던 이가 이렇게 내 일상에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사람이었던가 생각하니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런데 그가 이 세상을 등져서야 우리는 그 인연을 깊숙한 어제에서 끌어올리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세계는 험한 일로 가득한데 내 편이 되어줄 이들이 자꾸 사라져만 가고 있는 것 같다. 정말이지, 굿바이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과 우린 너무 많이 굿바이하고 있다. 잃어버린 후에 잊음이 오는지, 잊은 후에 잃어버림이 있는지 헛갈리는 요즘이다. 이 세계가 부정할수록 ‘기록하고, 기억하고, 증언하는’ 연극이 극장에서 많이 상연되길 바라마지 않는 이가 어디 나뿐이랴. 나는 만들어야 할 ‘좋은 연극’과 봐야 할 ‘좋은 연극’에 대해 글을 쓰면서 ‘굿바이하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굿바이하고 있는 극장이 불안하다’고 적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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