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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열린 공동체’라는 가족의 환상

한밭춘추 - 대전일보 2014

by 그림씨 2023. 1. 3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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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열린 공동체라는 가족의 환상

2014 대전일보 한밭춘추11. 25./조훈성(연극평론가)

드라마는 무엇보다도 재미’, ‘감동’, ‘교훈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모든 드라마가 이 삼위일체를 갖출 수가 있겠는가. 그 조화가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이 중 제대로 하나라도 봐줄 만하게 만들기가 퍽이나 어려운 일이다.

구두공장에서 일거리를 가지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밥상에 초벌 가죽을 올려놓고 본드를 칠하면서 모 TV드라마를 시청하는데 놀랍게도 턱을 괴고 열심히 쳐다보는 나보다도 그 드라마를 꿰뚫고 있다. 인물의 계보부터 시작하여 사건의 전개 양상, 그리고 그 파국의 결말까지도 이미 알아챈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더욱 대단한 것은 그 드라마에 대한 선지자적 전능함 따윈 버리고 감정을 섞어가면서 희노애락의 추임새를 넣는다. 어느새 나는 이 선지자를 팔짱을 끼고 바라보게 된다. 이 양반을 극장에 데려다 연출을 시키면 아마도 대단한 흥행을 할 텐데. 그런데 어디 그 선지자가 여기뿐이겠는가.

인기 있는 드라마는 알만한 이야기거나 알만하지 않더라도 자꾸 보다보면 알만해질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 허투루 뱉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말도 이유 없는 무덤 없다고 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마당극패 우금치의 마당극 <덕만이 결혼원정기>나 나무시어터의 <곰팡이>를 보게 되었는데 우연하게도 공통적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농간에 가족구성원의 차이는 보일지라도 가족의 구성과 구성원 간의 갈등, 그리고 화해와 공동체의 결속이라는 큰 얼개는 같다. <곰팡이>는 가족연대기도 선명하지가 않은 채, 가족공동체의 회복에 급급한 것 같아 아쉽다. 그런데 <덕만이 결혼원정기>가족에서는 사회적 문제의식에서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농촌 노총각 덕만에게 베트남에서 시집을 온 흐엉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나마 농촌문제와 다문화 가정의 한 갈등을 엿볼 수 있는데,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뿌리 깊은 순혈적(純血的) 태도의 문제까지 확장시켜 볼 수 있어 주목해 볼만 하다. ‘고자카이 도시아키민족은 없다에서 민족주의는 그 민족의 동일성을 확보하려는 운동이고, 결국 새로운 체제의 구축이나 기존 체제의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다민족. 다문화주의를 취하는 것은 사회 변동에 대한 긍정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것은 이미 민족이란 실체를 근본 토대 삼고 있어서 민족주의란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양성열린 공동체라는 미래 시대의 목표만을 강조한다고 뿌리박힌 민족의식을 쉽사리 전환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열린 공동체의 개념을 이렇게 연극에서 검토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순혈적 동일성에 대한 접근은 토착이주의 균형적인 문화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앞으로 이러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순혈주의의 문제에서 다문화 가족의 문제를 선명히 다룬 작품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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