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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을 만날 때의 마음가짐

한밭춘추 - 대전일보 2014

by 그림씨 2023. 1. 3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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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을 만날 때의 마음가짐

■2014 대전일보 한밭춘추 12. 10 ./ 조 훈 성(연극평론가)

연일 스포츠 기사 면에는 이번 시즌 프로야구 꼴찌 팀 한화 이글스에 대한 기사가 상종가다. 재미있는 일이다. 꼴찌 팀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대단할 수가 있을까. 그건 편먹을 때의 세상 정의가 아직 남아있음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사들을 훑어 내리면서 내가 힘내라고 격려해야 할 편이 누군가 꼽아본다. 김성근 감독의 말은 인상적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자체로 다른 사람한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자체로 다른 사람한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도 그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쯤도 우린 잘 알고 있다.

연극과 축제를 따라다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즐거움을 주기 위해 언제나 맞은편에서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제, 오늘에 대한 충분한 돌봄이 될 만하기 때문이다. 그이들의 열정에 대한 보답이 어디 다른 게 있을까. 그들만큼 그들이 직조한 세계에 흠뻑 빠져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지난 주말에는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에 있는 ‘한국공연예술체험마을’을 다녀왔다. 「에쿠우스」로도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블랙코미디」를 여기서 보게 되다니. 내가 놀랐던 것은 읍에서도 외곽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소극장이 있다는 것과 이 작품에 열연한 지역의 중견 배우들의 헌신, 그리고 관람석을 채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까지 연극의 네 박자를 골고루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품 안에서의 ‘정전 상황’에 대한 착상만으로도 이 ‘블랙코미디’는 재미있다. 그런데 열연하는 배우들이 헌신에 보답해야 하는 관객석에서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아무리 공연 예술에 대한 경험이 없다 할지라도 어떻게 연극을 보는 중에 버젓이 통화를 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 불빛은 여기저기서 반딧불이 따로 없었고, 심지어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까지 찍는다. 거기에 불편한 객석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뒤척거리는 소리에 아예 빈 객석에 눕기까지 하니 나는 객석 맨 뒤에서 이 관객석의 코미디에 넋이 나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극장에서 자신이 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자체가 나는 슬펐다. 혹시 공연예술 ‘체험’을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열연하는 배우들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다. 자신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열정을 다해 무대에 오르는 그들에게 그 열정에 대한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못한 것 같아서 나는 객석에서 부끄러워졌다.

예전 TV 광고가 생각난다. ‘청운스님’과 ‘한석규’가 고요한 산사를 걷는 장면에서 한석규는 이렇게 말을 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다른 세상을 만나려면 적어도 우리는 특별한(?) 마음가짐을 하고 극장에 들어섰으면 좋겠다. 그것이 누구 말대로 문화의 품격이 아닐까. 나는 피터 쉐퍼보다 더욱 블랙코미디에 탁월한 연출을 보여준 객석의 그날을 일기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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