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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 대하여

한밭춘추 - 대전일보 2014

by 그림씨 2023. 1. 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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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 대하여

■2014 대전일보 한밭춘추 12. 17./ 조훈성(연극평론가)

나 역시 관객일 수밖에 없다. 가공 세계를 만드는 쪽의 작업을 열심히 지켜보면서 나는 이 극장의 드라마야말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숱한 바람을 모두 들어주는 고해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해소의 그러한 이룸은 ‘들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 고해소를 너무 지나치게 드나드는 것 같아 좀 남세스럽기도 하다.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유효 판결 뒤 2명의 해고노조원이 이 엄동에 70미터 높이의 쌍용차 평택공장 굴뚝에 올라갔다는 단신 기사를 본다. 그러나 그 기사는 어느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보도되지는 않는다. 서울 혜화동 연극실험실에서 올려진 극단 해인의 <노란봉투>(이양구 작/전인철 연출)는 노동자들이 파업 과정과 그 이후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청구’의 대상이 되거나 형법에 따라 업무방해죄의 처벌 대상이 되어 고통 받는 현실을 다룬 작품이다. 언제나 이러한 현장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있어왔지만 유난히 올해는 <공장>, <극장집회>, <반도체소녀> 등과 같은 노동극 작품들이 많이 상연된 것 같다.

이러한 작품 경향에 대해 주목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얼마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일명 ‘땅콩 회항’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사주 부녀가 사과하고 나섰지만 사건은 일파만파 계속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숨어있었던 ‘을(乙)’들이 ‘갑(甲)’의 횡포를 백일하에 고하기 시작한다. 이야깃거리가 될 만하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눈에 보이든 보이진 않던, 분명 ‘괴물’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더 호평을 받았다던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공연도 그랬다. 엄마 없는 11세 소년 ‘빌리’의 발레리노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내게는 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의 파업 장면과 당시 영국 수상인 대처(M. H. Thatcher)를 헐뜯는 장면이 더욱 인상으로 기억에 남는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러한 작품들이 지금에 나타나는가이다. 과거의 어떤 사건이든 오늘의 어떤 현장이든 연극의 나타난 지금은 충분히 그 ‘시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내가 보기에 연극은 결핍된 세계 현실에서의 고통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이거나 또는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 드라마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나타내게 하고, 보인 것은 풀어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대전의 소극장 공연 목록을 한 번 살펴본다. 굳이 극장에서까지 관객이 이 시대의 괴물과 조우하여 엄청스러운 소외와 차별, 빈곤에 대한 부담을 질 필요까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적어도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그러한 작품 한둘은 봐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역시 없진 않다. 노동과 시민은 분리된 말이 아님에도 우리는 그것이 갖는 어떤 부정적 인식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우리’란 참 무서운 말이다. 그 단어가 수없이 착각과 오해를 만들어낸다. 그 연극이 ‘괴물’에게서 곧바로 해방시켜 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고 세계를 사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를 바라본다는 것 그것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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