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랑을 낮은 곳에 두어라
■2014 대전일보 한밭춘추 11. 18 / 조훈성(연극평론가)
박노해의 시 <사랑은 불이어라>에서는 “사랑은 불같은 것이란다. 높은 곳으로 타오르는 불같은 사랑. 그러니 네 사랑을 낮은 곳에 두어라.”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주말은 겨울의 코를 만져볼 만큼 바람이 찼다. 이런 계절이 들어설 때면 더더욱 바깥의 소리에 귀가 간다. 겨울에 아랫목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그이들을 위해 어디 밑불이 되기가 쉬운 일인가. 자기 살림 꾸려가기도 벅찬 오늘이 아니던가. 어머니가 김장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마땅히 집에 돌아가 일손을 거들어야 했으나 예정된 축제 행사 기록과 공연 관람을 내세워 나의 발길은 광화문을 향한다.
지난 15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주한외국대사관의 날’, ‘서울김장문화제’, ‘세월호 참사 추모 예술제-세월호연장전’이 함께 열렸다.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광장은 사람들로 꽉 메워졌다. 나는 세 구역의 각기 다른 축제 현장을 촬영한다.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천막과 스피커가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데, 내 발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영 갈피를 못 잡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북적북적한 곳보다 분위기 다른 엄숙한 그곳에 심정이 가니 그 마음 따라 ‘추모예술제’에 가서 서성이게 된다.
광장에 놓인 304개의 책상과 의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을 의미한다는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그들을 잊지 말자는 목소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이 뭉쳐진다. 저편에서는 문학인들이 4시간 16분 동안 낭독회와 음악회를 진행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풍물굿을, 동상 아래에서는 노래 공연이, 304개의 책상들이 놓인 장소에서는 연극인들의 다양한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나는 이렇게 그 겨울 광장의 둘레를 배회하며 기록한다. ‘예술은 사회가 주목하고 싶어 하지 않은 불편한 바깥의 이야기들을 다시 공적 공간에 소환해 의미를 두려는 작업이 아닌가’하고 적었다. 그리고 소외되고 배제된 대상을 포용하려는 그들을 보면서, 그 ‘행동(Ex-formal)’이야말로 예술과 사회의 관계 맺음과 그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극공작소 마방진의 ‘홍도’(고선웅 연출)를 봤다. 원작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신파를 이렇게 연출가가 변조해 낼 수 있다니. 이 통속극에 내 사방에서는 여전히 눈물을 찍어 훌쩍인다. 이 신파가 이다지 감동적이었단 말인가. 연출과 연기의 파격 때문인지, 원래 작품 텍스트의 매력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작품 종국에 ‘피눈물 같은 그 꽃잎을 뿌려주는 일밖에 없구나!’라는 대사와 색종이 날리는 피날레에 광화문 예술인들의 퍼포먼스를 떠올리며 유사감정을 갖는다. 홍도가 결국 칼을 빼들고 혜숙을 찌르는 장면에 나는 ‘순정’의 홍도가 오늘의 누구인가를 생각해본다. 광화문 거리에 수많은 홍도가 그렇게 비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홍도, 수많은 홍도가 이 추운 계절에 너무나 많이 거리에 나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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