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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빵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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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예술≫ 3월호 게재

“지금부터 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빵야”

- 「빵야」(고강민 PD/김은성 작/김태형 연출)

출연/하성광(빵야 역), 이진희(나나 역), 오대석, 이상은, 김세환, 김지혜, 진초록, 송영미, 최정우

공연일시: 2023년 1월 31일(화) ~2월 26일(일)

공연장소: LG아트센터 U⁺스테이지

글_조훈성 (연극평론가)

 

1. 역사의 쓸모, 이야기의 쓸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공연창작산실>은 2008년부터 시작돼 기초 공연예술 분야의 특성을 살린 단계별 지원을 통해 장르별 우수 창작 작품을 발굴하는 사업이다. ‘2022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들이 각 단계 별 성과를 바탕으로 연초부터 본 무대 위에 올려지는데, 해마다 작품 소재의 참신함이나 다양한 주제, 완성도 있는 작품 등으로 관객의 주목을 끌기에 서울의 극장에 들어설 때마다 자못 기대가 크다. 그 가운데 연극분야 <올해의 신작> 작품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와 연출가의 작품이 많았는데, 연극 「빵야」는 김은성 작가의 신작으로 '장총'을 의인화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재조명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를 고민케 한 작품으로 '장총'이란 소재를 역사적 현장과 연결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접근이어서 어서 그 무대를 만나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작품이 올려진 LG아트센터도 마곡으로 이전 후 처음 찾게 돼 이래저래 연극 「빵야」는 내 걸음 사이를 재게 만들었다.

김은성 작가의 데뷔작인 「시동라사」(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부터 전작인 「순우삼촌」(2009), 「연변엄마」(2011), 「목란언니」(2012), 「로풍찬유랑극단」(2012)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리얼리즘적이면서 모순된 역사와 그 시대를 사는 인물에 대한 인문적 태도가 돋보였다. 그래서 「빵야」 역시, 일본 제국주의의 마지막 주력 화기인 ‘99식 아리사카’ 장총이란 독특한 소재를 매개로 어떻게 역사적 배경을 엮어 인물의 서사를 풀어갈 것인지 궁금했다. 역사적 인물을 매개로 한 작품은 그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으나 이렇게 ‘총’이라는 무기의 연대기를 역사와 연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취재에 대한 성취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여기에 작품을 끌어가는 '나나'라는 극중 작가 캐릭터 역시 작가적 분신이라 할 수 있어서 이야기 전개에 대한 타당성과 몰입성을 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점도 눈길을 끈다. 그리고 장총 ‘빵야’의 주인이었던 각 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도 허투루 다루지 않고 장면의 사실적 묘사와 함께 인물 심리의 짜임새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엮어 적절한 인물 관계를 통해 극의 대사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빵야’를 든 인물의 서사를 통해 그 지난한 역사의 기억에 대한 쓸모를 새기면서, 빵야가 들려주는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 1945년생 99식 장총의 기억

‘빵야’, 총성 한 발, 한 발이 울릴 때마다, 기이하게도 우리는 역사의 한 홀, 한 홀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총성 한 발, 한 발이 삐꺽거리는 한국 근현대사의 핏줄기를 잇는다. 아마도 연출자(김태형)는 작품에서의 그 총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각 편의 인물의 연대기를 드라마적으로 이으면서 그 격발마다의 반동을 체감할 수 있는 방도에 대해 숙고를 거듭했을 것이다. 그 장총이 누군가를 거쳐 갈 때마다의 연결점에 대한 인과가 맞아떨어지면서도 각 기억의 재현의 장치가 관객에게 납득될 만해야 하고, 나아가 작품의 굵고 선명한 메시지를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의 주인물이라 할 수 있는 ‘빵야’역(하성광/문태유)과 ‘나나’역(이진희/정운선)의 배역은 그 각 편의 이야기를 몰입 가능하게 끌고나갈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한데, 이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무리없이 이를 해나간다. 여기에 더블캐스팅으로 연기하면서 매일 매일의 작품 전개에 힘이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작품의 줄거리는 한물간 40대 드라마 작가인 ‘나나’가 소품창고에서 발견한 낡은 장총에 ‘빵야’라는 이름을 붙이고 장총의 이야기를 소재로 드라마 대본을 쓰게 되는 것으로 극은 전개된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일본관동군의 조선인 장교 ‘기무라’가 빵야의 첫 주인으로, 일등병 길남, 8·15 광복 전후에는 중국 팔로군 강선녀, 제주 4·3사건 때는 제주도 국방경비대 병사 양무근과 서북청년단원 방신출, 한국전쟁에서는 학도병 이원교와 북한군 의용대 조아미, 그리고 빨치산 출신 토벌부대인 보아라 부대 병사 반동식, 그리고 이어 빨치산 소녀 지설화가 빵야의 주인이었다. 전쟁이 끝나서는 심마니, 사냥꾼, 영화 제작자 등을 거쳐 낡은 영창 피아노 위에 세고비아 기타 옆 단단한 케이스에 담긴 소품으로서도 쓸모를 다한 장총 한 자루로 놓여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장총 ‘빵야’나 퇴물처럼 밀려난 드라마작가 ‘나나’나 삶의 가장자리 놓여 있다는 설정은 잊고 싶던 ‘이야기’의 발화를 통해 다시 ‘기억’으로 살아나면서 그 역사의 줄기를 생생히 이끌어가게 된다. 총을 쥔 각 인물이 옮겨갈 때마다, 역사의 상흔이 살아나게 되고, 또 그 인물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통해 ‘삶’, ‘역사’가 옮겨진다. 곧 그것이 비극일지라고 삶,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해내고 있다. 99식 장총의 기억은 바로 각 인물의 비극의 역사이면서 우리 역사의 상흔을 다시 되새김하게 된다는 것이다. ‘1945년생 99식 아리사카 장총’이라는 사료의 출발점은 이 연극의 역사적 고증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면서, 마치 각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실제 인물로 믿게 한다.

한편, ‘총’이라는 쇠붙이와 나무뭉치의 상반된 생명성을 형상화하고자 한 흔적은 작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장총’의 드라마가 일관된 폭력성에 대한 기억으로만 경주하지 않고, 오히려 ‘총’과 ‘악기’라는 아주 참신한 대비를 연출적으로 적절하게 배치했다. 그래서 ‘총’이라는 ‘상징’, 그 진부한 시선의 노출에서 벗어나고자 공을 들인 덕분에 이 작품을 더욱 풍부한 드라마로 확장시켜간다. 결국, ‘무기’로서의 상처, ‘악기’로서의 ‘치유’라는 이중성까지 세밀하게 작가의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연대기 연극의 새로운 발견

‘빵야’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모든 순간은 비극이었다. 어쩌면 이 작품이 지금 무대에 올려져 있다는 것은 이 세계의 비극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빵야가 이전과 다른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악기로 거듭나고 싶어 하는 삶, 그 희망이 작품 대단원에서 살짝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그것이 우리가 이 절박한 세계를 살아가는 버팀이 될 만하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큰 무대를 활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각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구현하는 각 배역의 배우들은 빵야의 주인으로서, 후미진 인생의 삶, 그 개성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또 극중 ‘빵야’의 역사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나나’가 드라마 대본을 쓰는 과정, 현재의 공연·드라마 제작시스템에 대한 현장적이고 사실적인 묘사, 풍자도 극적 재미가 뛰어나다. 그 장장 180분의 엄청난 역사의 파노라마가 막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또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남는다. 그 기대를 또 저버리지 않고, 이내 이 연극, ‘빵야’의 하이라이트 서사가 준비되어 있어 이 연극을 복습할 수 있는 기회도 잊지 않고 끼워 넣는다.

극의 마지막, 각 등장인물들은 하모니카, 기타, 바이올린, 트럼펫, 아코디언 등을 들고 하모니를 이룬다. ‘총’의 속성을 분해하여 쏘고 죽이는 가해자가 아니라 그 ‘총’의 사선에서 바라봐야 했던, 희생, 피해자의 모습을 연극을 통해 기억하게 된다. 악의 편이든 선한 편이든 그 어느 쪽에만 서있지 않았던 ‘빵야’의 연대기가 그만큼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은, ‘언제쯤 은하수를 끌어다 무기를 씻을까’라는 두보의 싯구를 극중 대사로 차용한 것에서 이 연대기 연극의 주제의식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1945년생, 인천 부평 조병창에서 태어난 일본 제국주의의 산물 99식 소총의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빵야’가 ‘나나’를 위로하면서 전하는 대사 한 토막도 빠뜨릴 수 없다. “이야기 하나를 힘들게 쓰면 힘든 사람 하나가 잠시 쉬게 될지도 몰라. 이야기 하나를 아프게 쓰면 아픈 사람 하나가 조금은 덜 아프게 될지도 몰라.”라는 말이 작가의 소명의식이 무엇인지 곱씹게 한다. 연극 안의 변두리의 삶에 대한 공감은 어쩌면 연극이라는 세계 자체가 소외되어 있다는 변두리 인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극장을 찾을 때마다 그 변두리 연극, 또 가장 변두리에 있는 내가 위로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때문에 내가 이 변두리를 떠나지 못하게 된 거라고 믿는다. 공들인 이야기는 언제나 빛이 난다. 오늘 연극은 누구의 공덕이던가. 내려가는 열차에서 나는 그 연극을 뒤에 놓고 가기가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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