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꿈자리가 사납더니, 종일 오른쪽 뒤통수부터 어깨까지 잔뜩 뭉쳐서 여간 몸이 무거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내게 할당된 그림책 두 권을 딸애를 위해 읽는다.
녀석이 아빠의 낌새를 눈치채고 "오늘은 어린이날이니까 특별히 세 권을 읽어줄거지?"하고 먼저 선공한다. 협상력하곤... "알았어. 그럼 제일 읽고 싶은 책, 두 권만 가져와!"하고 마지못해 수락한다. 한 권은 다섯 명의 마법소녀가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이고, 다른 한 권은 한 꼬마 슈퍼히어로가 똥을 잘 닦지 못하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혼자서 똥을 닦을 수 있는 똥닦권을 익히고 악당, 괴물들 손에서 지구를 지켜낸다는 내용이다.
녀석이 그림책 읽는 것을 영상으로 찍자고 강권했으나, 차마 녀석이 들고 온 책 속의 슈퍼히어로들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그 스펙타클한 세계를 내가 침을 튀며 이야기를 튀겨내는 모습을 도저히 담아 저장할 자신이 없었다. 어린이날, 난 겨우 그림책 두 권으로 입을 닦는다.
짝꿍은 일박이일 어린이날 대작전을 수행하고 돌아와 아이와 금세 꿈나라다. 곤한 숨소리 사이에 둘의 주고받는 잠꼬대가 오늘따라 더 감사하게 들린다. 가정의달이 별거 있는 게 아니다. 각자의 헌신을 특별히 새기는... 부산한 빗소리에도 아이의 손이든 부모의 손이든, 스승과 제자의 걸음이든 그 곁은 한 숨이 되길 바라면서 나란히 걷는다.
나는 동떨어진 채 여기저기 일에 끼지 않고 멀뚱히 바라보는데, 그런 내 생활이 참 재미가 없기도 하다. 인간 존재는 생존이 아니라 삶이라는데, 삶이 재미가 없으면 안 되는데... 오월하고도 오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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