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는 싹을 언제 틔울지 약속하지 않았다
엄마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날이라서 녀석은 나랑 종일 함께 놀아야 한다. 녀석이 하원 버스를 내리자마자 제 친구들이랑 다섯 시에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며 집에 와서도 시계 긴 바늘이 12에 다다르길 기다리며 수십 번은 시간을 물어본 듯하다. 시계도 못 보면서 저희들끼리 약속을 했단 게 우습기도 하고 어쨌든 나가 놀기 전에 학습지 푸는 것도 곁에서 챙기면서 덩달아 내 일은 뒷전에 녀석의 스케줄을 위해 간식이며 음료수들도 챙겨 넣는다. 백여 년 전 시계 없이 대충 해가 중천쯤이든, 산에 해가 걸릴 때쯤이든, 언제쯤 만나자는 조상들 마냥, 시계도 안 보고 바깥으로 뛰쳐나갈 생각만 한다. 친구들에게 나눠 줄 보석반지통까지 들고 놀이터에 후다닥 달려나왔으나 제 친구들은 아무도 없이 바람만 휭-휭 분다. ..
그림씨 스토리 잡글/그림씨 잡설
2023. 5. 17. 18:34